칼럼

실리콘밸리는 처음부터 실리콘밸리가 아니었다 [기획] 판교는 왜 실리콘밸리가 되지 못했나 - 2편

김승용 대표기자
2026.03.254
실리콘밸리는 처음부터 실리콘밸리가 아니었다 [기획] 판교는 왜 실리콘밸리가 되지 못했나 - 2편
실리콘밸리는 처음부터 실리콘밸리가 아니었다 [기획] 판교는 왜 실리콘밸리가 되지 못했나 - 2편 관련 자료
실리콘밸리의 시작은 반도체도 구글도 아니었다. 한 교수가 제자에게 "여기 남아서 창업해라"고 말한 순간이었다.

실리콘밸리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구글, 애플, 메타, 테슬라. 후드티 입은 창업자, 차고에서 시작하는 신화, 수십억 달러 IPO.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화려한 기업 이름이 아닌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프레더릭 터만(Frederick Terman). 스탠퍼드 공학부 교수였던 그는 1930년대부터 제자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졸업하고 동부로 가지 마라. 여기 남아서 뭔가 만들어라." 그 말을 들은 두 제자가 있었다.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 1938년, 팔로알토의 작은 차고에서 538달러로 시작한 그들의 회사가 HP다. 실리콘밸리 최초의 신화는 천재 창업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학과 제자 사이의 신뢰에서 시작됐다.

대학이 산업단지를 만든다는 발상

터만의 진짜 업적은 HP를 탄생시킨 것이 아니었다. 1951년, 그는 스탠퍼드 부지 안에 '스탠퍼드 산업단지(Stanford Industrial Park)'를 만들었다. 대학이 직접 땅을 기업에 임대하고, 그 기업들이 스탠퍼드 연구실과 인재를 활용하는 구조였다. 오늘날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로선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HP, Varian Associates, Lockheed가 첫 입주 기업이었다. 대학과 산업이 같은 울타리 안에서 붙어 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설계의 핵심은 물리적 근접성이었다. 교수와 엔지니어가 같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박사 과정 학생이 오전엔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고 오후엔 옆 건물 기업에서 인턴을 했다. 아이디어는 발표장이 아니라 복도에서 나왔다.

선순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스탠퍼드가 만든 것은 단순한 인재 공급 파이프라인이 아니었다. 하나의 선순환 구조였다. 대학 연구실에서 기술이 나온다. 그 기술로 스타트업이 생긴다. 스타트업이 성장해 Exit한다. 성공한 창업자가 다음 세대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직접 또 창업한다. 그리고 그 경험과 돈이 다시 대학으로 흘러들어온다. 2002년 페이팔이 이베이에 15억 달러에 팔렸을 때, 그 돈은 사라지지 않았다. 엘론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만들었고, 리드 호프만은 링크드인을 창업했으며, 피터 틸은 팔란티어를 세우고 Founders Fund를 만들어 차세대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페이팔 마피아'라 불리는 이 네트워크는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핵심 동력이 됐다. 이 선순환의 출발점은 늘 대학이었다. 스탠퍼드 기술이전사무소(OTL)는 1970년 설립 이래 누적 약 19억 달러의 라이선싱 수입을 올렸다. 구글의 PageRank 알고리즘도 원래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연구비를 받은 스탠퍼드 박사 논문에서 출발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창업 초기 스탠퍼드 지도교수에게 회사 지분 일부를 대학에 귀속시켰다. 대학은 그 지분으로 수억 달러를 회수했고, 그 돈은 다시 연구비로 쓰였다.

실리콘밸리는 기업들의 집합이 아니다

한국에서 실리콘밸리를 이야기할 때 자주 하는 실수가 있다. 좋은 기업을 많이 모으면 실리콘밸리 같은 곳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판교가 바로 그 방식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기업들의 집합이 아니다. 대학을 중심으로 지식과 사람과 자본이 순환하는 생태계다. 기업은 그 순환의 결과물이지, 원인이 아니다. 스탠퍼드 동문이 설립한 기업의 연간 매출 합계는 약 2.7조 달러로 추정된다. 독립 국가였다면 세계 10위 경제 규모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스탠퍼드가 위대한 대학이라는 게 아니다. 대학이라는 뿌리 없이는 이 규모의 생태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판교에는 지금 무엇이 있는가. 1,700개의 기업, 8만 명의 종사자, 100조 원의 매출. 그리고 뿌리를 만들려는 첫 번째 시도들. KAIST AI 연구원이 착공됐고, 카네기멜런대와 협약이 체결됐다. 하지만 터만이 스탠퍼드 산업단지를 만든 1951년부터 구글이 창업된 1998년까지는 47년이 걸렸다. 생태계는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이다. 다음 화에서는 뿌리를 늦게 심었다가 한번 무너진 뒤 다시 살아난 보스턴의 이야기를 한다. 앵커 대학이 없을 때 혁신 클러스터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Route 128의 경고를 들여다본다.

이 글은 '판교는 왜 실리콘밸리가 되지 못했나' 시리즈 2편입니다.

김승용 대표기자

혁신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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